
가오슝 산 중턱에 세워진 헤이안 불교의 성지 [신호사]
JR '야마사키역' 개찰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임제종 도후쿠지파의 [묘키안]이다. 창건된 무로마치 시대 명응 연간(1492~1501년) 당시와 거의 변함없는 건물이 남아 있다.
서원 안쪽에 있는 '다이안(待庵)은 아이치현 이누야마시 유라쿠엔(犬山市有楽苑)의 '조안(如庵)', 교토시 다이토쿠지(大徳寺)의 '미탄(密庵)'과 함께 국보 삼대 다실(三大茶室)로 꼽힌다. 또한, 센노리큐가 관여한 일본 유일의 현존하는 다실로도 유명하다.
그런 센류큐와도 인연이 깊은 [묘키안]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센리큐(千利休)는 다이에이 2년(1522) 사카이의 상가에서 태어나 다케노 쇼오(武野紹鷗)로부터 '와비차(다도)'를 계승해 모모야마 시대에 일본 특유의 다도를 크게 발전시켰다. 리큐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두(茶頭, 차를 끓이는 전문직종)로서 당시의 다도를 이용한 정치 세계에서 활약했다. 그의 후손은 다도의 삼천가(三千家)로 이어져 현대 다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국시대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까지 난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던 다실. 선적인 무아의 경지와 말차의 예절을 결합하여 새로운 미의 세계를 창조한 센리큐. 필요 이상의 것을 배제하고 와비차를 대성시킨 리큐를 상징하는 장소가 [묘키안]이다.
센고쿠가 관여한 일본 유일의 현존하는 다실 '다이안'을 보기 위해 건축, 디자인, 다도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고 한다.
리큐가 세운 다실 '대암(待庵)'이 있는 [묘기암].
이 다실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천하를 가르는 덴노산 전투가 벌어진 전국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야마사키의 저택에 살면서 리큐를 초대해 다도를 즐겼다고 한다. 리큐의 제자였던 묘키안(妙喜庵) 3세 공숙(功叔)스님이 다도회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에도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다이안(待庵)' 앞에 서서 가장 먼저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지족(知足)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구성이다. 리큐의 스승인 다케노 쇼오구(武野紹鷗)부터 다실의 넓이는 4첩 반이 규범이었지만, 이곳은 겨우 2첩에 불과하다. 주지인 다케다 시코오(武田士功)의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해 차를 끓인다. 전란을 살아가는 손님이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에서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느낄 수 있다.
에도 시대에 오야마자키로 옮겨졌다는 다실 '다이안'.
현재보다 약간 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니지리구치,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는 천정, 지역 대나무를 사용한 연지창, 다다미방과 벽의 경계를 없애기 위해 고안된 무로도코 등, 이 다다미 다실의 구석구석에는 리큐의 미의식과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오야마자키의 대나무, 요도가와의 갈대, 삼나무 등 이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이 지역의 기후에 맞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주변의 작은 행복이 잘 보이지 않을 때, 꼭 한번 방문해 보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대암(待庵)'의 입구를 통해 다실 안을 들여다본다.
[묘기암]의 주지 다케다 시코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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