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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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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카의 탑의 기이한 사건과 그 후

야사카 신사와 기요미즈데라 언덕의 중간쯤에 위치한 자갈길을 따라 올라가면 양쪽에 운치 있는 분위기의 마치야가 늘어선호관사 오층탑가 보인다. 교토 사람에게는 호칸지라기보다는 법관사라고 할 수 있다,"야사카의 탑"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 이 오층탑은 높이가 46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언덕에 있고 주변 집들이 낮게 자리 잡고 있어 어디서든 눈에 잘 띈다.변화무쌍한 교토의 도시이지만, 이 주변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교토다운 풍경 중 하나인 탑은 히가시야마의 랜드마크이다.로 되어 있다.


예전에 촬영한 야사카의 탑. 언덕 위에서 야사카의 탑을 뒤돌아 본 모습.


메이지 말~다이쇼 초기의 엽서(필자 소장). 당시에도 변함없는 야사카의 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오층탑은 아스카 시대,성덕태자가 여의륜관음의 꿈고로 난바 사천왕사보다 먼저 건립하고 불사리를 봉안했다.라고 전해진다. 헤이안 시대에는 관사(官寺, 국가의 감독을 받는 대신 그 경제적 보장을 받았던 사찰) 칠가사(七ヶ寺) 중 하나였다. 가람은 백봉 7(678)년의 건축으로 알려져 있다. 교토 사람들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이 탑에 그 옛날,특이한 일이 일어났다....

천력 2(948)년의 일이다.야사카의 탑이 북서쪽으로 기울어졌다.그 방향으로고쇼가 있다에서부터,궁궐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까봐 난리법석!가 되었다.

시간의 황제는,법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수행자 정조에게 탑을 원상복구하라고 명령한다.정조가 탑으로 향했다. 바로 정조가 탑을 향해기도하자 하룻밤 사이에 탑이 곧게 펴졌다.라고 한다.

정조는 신비한 전설을 가진 인물그리고 이전 글에서도 소개한 이치조토바시(一条戻橋)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구마노에서 돌아온 정조가 이치조토바시에서 우연히 아버지의 장례 행렬을 만났다. 정조는 한 눈에 보고 싶었다며 슬퍼하며 기도를 드리자 아버지가 소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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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기울기를 고쳤다고 전해지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이 탑을 지은 목수의 아들인 도리이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의지할 데 없는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일부러 탑이 조금씩 기울어지도록 장치를 하고 아들에게 비법을 전수하고 죽었다.나중에 기울어진 탑의 소란을 들은 아들은 "내가 고쳐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기울어진 탑을 바로잡아 평생 고생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보답을 받았다.

사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탑의 중심 기둥에 경신 씨가 들어 있던 상자를 꺼내어 탑의 기울기를 바로잡은 것뿐이었다. 이후 상자에 들어있던 경신은 법관사 경내에 법당을 지어 안치되었다.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과 아버지의 건축가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경신당

부모를 생각하는 정장과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일화를 남긴다.호칸지는 예전에는 넓은 경내를 가지고 있었고, 야사카 경신당은 경내의 한 곳이었다.현재의 야사카의 탑은 무로마치 시대 8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재건한 것이다.

교토의 여름을 수놓는 '기온마츠리'의 산 중 하나에야마부시야마가 있다.신체는 정조가 산승 복장으로 대봉에 입산하는 모습.를 나타낸다. 올해는 야마호코 순행이 중단되었지만, 내년에는 야사카의 탑의 기울기를 바로잡은 법력의 소유자 조조(浄蔵)와 관련된 '야마부시야마'의 용맹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교토의 마하이탐방이란?

교토의 거리 곳곳에 존재하는 전승. 12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마하'의 신비로운 교토의 '이'세계를 월간지 Leaf에서 '교토의 마계탐방'을 연재했던 오피스 TO의 두 사람이 실제로 그 곳을 방문하면서 풀어본다.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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