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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사쿄구의 외딴 산속 깊은 곳에 200년 동안 살았다는 기인이 있었다.라고 묻는다. 이름을백유자(白幽子)라고 말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선인이라고 불렸다. 그북백천의 동쪽, 우류산(瓜生山)의 산속에 거주지가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바로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근세인전』백유자(白幽子)
(국회 디지털 컬렉션 소장 자료)
일본 침례병원 주차장 옆에 우리오산 등산로가 있다. 입구 근처에서 '곰 주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계절에 곰은 겨울잠을 자고 있을 거라며 마음을 다잡고 서둘러 올라간다. 곧 등산로가 있고, 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야마즈미신사(大山祇神社)・지류다이묘진(地龍大明神)의 신사 뒤편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곰 주의 표지판
도심과 달리 산속에는 3일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 있었다.
차산으로 향하는 산길
에도시대의 거상 차야시로지로의 별장이 있던 차야마 산 정상을 넘어 산속으로 들어가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일대는 시라카와석의 채집지로 거암이 많다.
산길에는 거석이 남아있다
과연 선인이라는 인물이 살았던 곳답게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린다.선인의 거주지다운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시라카와석 대바위가 나타났다. 그 큰 바위를 왼쪽으로 우회하면 그곳은 작은 광장의 움푹 패인 땅이 되어 있었다.
이곳이 바로 백유자의 거주지였다!
백유자암거주지적
백유자에 대해 알아보니 나이를 알 수 없는 인물인 것 같다. 문헌에 따르면 그의 나이는 200세가 넘었다고도 하고, 외모는 60세가 넘은 것 같지만 어떤 노인이 백유자에게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에 대해 묻자 마치 사실대로 말한 것처럼 이야기했다고 한다.
풍모에 관해서는, 머리는 처진 무릎을 넘어 무릎을 꿇고, 얼굴은 대추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천문에 밝고 의술에 통달했으며, 어류와 조류는 먹지 않고,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술에 취한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다. 나무 열매를 따서 먹고 사슴이나 원숭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보면 도망쳤다고 한다.
백유자 거주지에는 백유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겨울에는 상당히 추웠을 것으로 보인다. 습기도 꽤 많았을 것 같다. 근처 눈길에서는 다양한 동물의 발자국도 만날 수 있었다.
백유자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우물 터
산에 사는 사람의 발자국(너구리?)
또한 백유자는 전국시대 말기부터 에도시대 초기에 무인이자 한시인으로 활약한 이시카와 조잔(石川丈山, 시선당을 지은 사람)의 스승이기도 하고, 반대로 제자라고도 전해진다. 잘 알려진 에피소드로는 임제선 중흥의 시조로 불리는 백은선사(1685~1768)가 병에 걸려 백천산 중턱의 백유자를 찾아갔을 때 '내관법'이라는 건강법(정신요법)을 전수받아 병이 나았다고 전해진다."선인(仙人)이란 산속에 살면서 불로장생하고 신통력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하는데, 백유자는 바로 선인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오산은야사카 신사의 우두천왕이 우리오산에 강림했다.라는 전설이 있다. 역병 봉쇄에 강한 신만이 이 산이 지금,건강과 질병을 치유하는 파워스팟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코 험준한 산이 아니어서 걷기 편하고 계류도 있어 걷는 내내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은 선인의 전설과 산의 맑은 공기를 접하며 백유자가 터득한 건강법의 한 조각이라도 얻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로운 우리오산의 산 속
교토의 거리 곳곳에 존재하는 전승. 12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마하'의 신비로운 교토의 '이'세계를 월간지 Leaf에서 '교토의 마계탐방'을 연재했던 오피스 TO의 두 사람이 실제로 그 곳을 방문하면서 풀어본다.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