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안 시대, 수도에 유명한 요괴 거리가 존재했다.했다. 헤이안 시대 최강의 음양사아베 하루아키이 식신(食神)이 숨겨져 있는 일조대교로 이어지는 일조대로, 지금의이치조도리이다. 이 거리는 당시헤이안쿄 최북단에 해당하며, 그 이전에는도시인에게 이계의 땅였다. 지금도 요괴 거리인 이치조도리 다이쇼군 상점가에는 각 점포 앞에 개성 있는 요괴들의 오브제가 등장해 '마을 부흥'에 한몫을 하고 있다.
다이쇼군 상점가(이치조 요괴 거리)
가게 앞에 서 있는 요괴
그런데 당시 도쿄에는 이이치조대로 외에 백귀야행이 출몰하는 또 다른 장소가 있었다. 헤이안 귀족들은 밤에 그곳을 지나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것은 오우치우리의 동남쪽 모퉁이, 니조오오지와 오미야오오지가 교차하는 니조오오미야의 길목이었다.
오우치우리의 뒷문인 이 찻길,'아와와노츠지'라고 불리며 백귀야행이 출몰한다고 하여 도시인들이 기피하는 곳이었다. 조금 독특한 지명의 유래는 백귀야행과 마주쳐서 '아야와'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
그 '백귀야행'은 요괴들이 줄을 지어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먹으면 큰 병에 걸리거나 운이 나쁘면 사망에 이른다.'라는 말을 들으니 참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아와와노 쓰지'는 아베 하루아키의 연고지이기도 한 것 같다. 하루아키가 아직 어렸을 때 스승인 가모 다다유키(加茂忠行)와 함께 걷다가 백귀야행(百鬼夜行)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를 재빨리 알아차리고 다다유키에게 알린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또한 『금오신화집』과 『대경』에는 이 길목에서 귀족이 백귀야행(百鬼夜行)을 당했는데, 존승다라니의 부적을 옷에 꿰매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존승다라니의 부적은 앞서 일조대로에서도 백귀야행에 위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때는 부적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 요괴들이 허둥지둥 도망쳐 버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요괴들이 돌아다닌다고 믿었다.忌夜行日(기야행일)라는 것이 있어 그 날 밤에는 가급적 외출을 피했다. 중세 백과사전 같은 책인 '슈가이쇼(拾芥抄)'에는 실제로 기야행일(忌夜行日)이 기록되어 있으니 미신이라고 비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귀야행 그림책
(국회 디지털 컬렉션에서 재인용)
자, 이제 현재의 '아와노 쓰지'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쉽게도 츠지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헤이안 시대에 있었던 니조오미야의 츠지는 지금은 니조성 성 안에 편입되어 있었다. 마침 니조성을 방문했을 때는 아직 오분홍빛 벚꽃이 만개한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성 안은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백귀야행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오우치우리의 동남쪽 모퉁이는 니조성이다.
그럼,인간 세상에서 큰소리치며 밤을 지낼 곳을 잃은 요괴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마도 천 년이 지난 지금도 교토의 한 구석에 조용히 숨어 있다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반짝반짝 빛나던 거리가 어느 날 문득 골목길을 돌아서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숨어 있는 듯한 기척을 느낄 때가 있다. 마을집의 그늘, 건물 한 구석에 부자연스럽게 방치된 고목, 신축 아파트의 북동쪽 귀신막이, 집의 모퉁이 돌멩이 등.... 그것들은 모노노케들의 존재를 용납하는 그릇을 가진 교토라는 도시만의 개성이 아닐까.
꽃놀이 시즌이 다가온 늦은 밤, 술에 취한 꽃놀이객의 유혹에 이끌려 백귀야행(百鬼夜行)을 만날지도 모른다.......
교토의 거리 곳곳에 존재하는 전승. 12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마하'의 신비로운 교토의 '이'세계를 월간지 Leaf에서 '교토의 마계탐방'을 연재했던 오피스 TO의 두 사람이 실제로 그 곳을 방문하면서 풀어본다.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