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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교토는 관측 역사상 가장 늦게 장마가 시작됐다. 덕분에 6월은 비교적 상쾌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더위를 피해 교호쿠초(京北町)로 발걸음을 옮겼다.
JR버스 '저우산' 행을 타고 교호쿠초 세노구치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타키마타노타키 폭포(滝又の滝)를 목표로 했다.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패자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 쥬케이 인과거사 연고의 폭포청량한 숲 속을 걷다 보니 어느덧 계곡을 따라 나왔다. 최고 기온 30℃도 아랑곳하지 않고 음이온 효과로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JR버스 호소노구치 버스정류장
타키마타 폭포를 향해 산길을 가다
도중에 만났다!
두 갈래 나무의 뿌리에 있는 이나리 씨?
강물이 맑다. 왼쪽에는 물고기도
산행을 즐긴다고 한다,갑자기 조각의 문이 등장한다.
갑자기 나타나는 문!
그 이후로는,벽면을 뚫은 동굴 안에 하나하나 안치된 석불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불상을 새겨 안치했을까? 산자락에 갑자기 나타난 부처님에 놀라는 동시에 잠시 신비로운 기분에 젖어들었다. 석불군 중간의 갈림길에서 타키마타 폭포 가는 길로 길을 잡는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구멍 속에 불상이 있다!
불상이 차례로 등장한다
한참을 가니 폭포에 도착했다. 큰 폭포는 아니지만 2단으로 나뉘어 떨어지는 모습은 꽤 볼만했다.
이 폭포의 대부가 오다 노부나가의 조카인 십계 인과거사(十界因果居士)였다.라고 전해진다. 본능사 변란 이후 십계인과거사는 이 폭포 위에 숨어 살면서 이곳에서 폭포 수행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교토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있는 이 폭포다. 본능사 변란 이전에는 더더욱 육지의 외딴섬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십계인연거사는 왜 이곳에 숨어 살아야만 했던 것일까?
十界因果居士ゆかりの滝又の滝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에피소드가 있었다.
노부나가 시대, 아즈치에서도 교토의 법화종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법화종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싶었던 노부나가는 니치렌종과 정토종에게 종교 문답을 명령한다. 속으로는,'안토종론'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이 십계인연거사(十界因果居士)였다. 결과는 일련종이 패배했고, 문답을 한 승려들은 가사를 벗겨지고, 매질을 당하고, 굴욕적인 서약을 하게 된다. 또한 거액의 상납금도 지불했다. 그러나 이 판결의 배후에는 교토뿐만 아니라 노부나가의 무릎 아래 있는 아즈치나 기후에서 세력을 키워가는 니치렌종을 견제하려는 노부나가의 계략, 그 뜻을 받은 십계인과거사가 정토종을 유리하게 이끌어 승리하게 했다는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노부나가가 죽은 후 정세는 급변했다. 십계인과거사는 법화종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경북의 산속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종교문답의 법화종 측 승려와 본능사 변을 일으킨 명치광수(明智光秀)는 친분이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 큰 사건의 원인 중 하나가 법화종에 대한 원한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나 사람의 세상에는 '마'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키마타 폭포로 가는 길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종교문답에서 일련종과 대결을 벌인 고승 중 한 명이 십계인연거사(十界因果居士)라고 적혀있었다. 그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며, 폭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물소리에 기분 좋은 기분을 느끼며 타키마타 폭포를 떠났다.
세노노 마을을 걷다 보면 여름의 꽃, 테센이 피어 있었다.
교토의 거리 곳곳에 존재하는 전승. 1200여 년의 세월을 거쳐 탄생한 '마하'의 신비로운 교토의 '이'세계를 월간지 Leaf에서 '교토의 마계탐방'을 연재했던 오피스 TO의 두 사람이 실제로 그 곳을 방문하면서 풀어본다.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