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鉾
오닌의 난 이전, 야마호코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구지토리무라(くじ取らず)'의 호코로 매년 순행의 선두에 서고 있다. 산조 소대장장이 소콘(三条小鍛冶宗近)이 딸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며 [야사카 신사]에 봉납했다는 대장도 전설에서 유래했다. 역병이 유행했을 때 대장도를 장식한 덕분에 역병이 진정되었다는 일화 등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어린아이가 타고 순행하는 유일한 호코로, 어린아이의 '시메노와키'를 시작으로 야마호코가 신성한 영역으로 나아간다. 우뚝 솟은 20미터 길이의 원목鉾 머리에 종근작의 장검(현재는 복제품)을 들고 역병의 악을 쫓는다.
효험: 액막이, 역병 퇴치
函谷鉾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맹상군이 닭의 울음소리로만 열리는 함곡관(函谷關)을 한밤중에 탈출하려 할 때 부하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관문이 열려 진나라를 탈출할 수 있었다는 고사에 근거한 것이다. 봉두(鉾頭)에 달린 위쪽을 향한 초승달과 산 모양이 산속의 어둠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높이가 22m에 달하는 진목(眞木)은 가운데 '천왕좌(天王座)'에 맹상군을 모시고 그 아래에는 암수 닭이 놓여 있다. 천명 대화재(1788년)로 소실된 지 50년 만에 복원되었으며, 재건 후에는 어린 시절의 이치조 실량군(메이지 천황의 후궁인 쇼켄 황태후의 친동생)을 모델로 한 실물 크기의 어린아이 인형 가타마루키미(かたまる君)와 함께 순행하고 있다.
효험: 액막이, 역병 퇴치
기쿠스이호코
무로마치 시대에 마을에 있던 우물 기쿠미즈이(菊水井)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덴메이의 대화재에서 부흥한 후 막부 말기의 병화로 소실되었으나, 불에 타고 남은 현수품 부재를 사용하여 1952년(쇼와 27년)에 '쇼와의 호코'로 다시 부활했다. 곧게 뻗은 참나무에 금빛으로 빛나는 십육변국화(十六辨菊花)의 호코두(鉾頭), 남색 바탕에 금색 글씨로 '菊水(국수)'라는 전서(篆書)가 새겨진 액자가 인상적이다. 중앙의 '천왕좌'에는 300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중국의 펑조(彭祖)의 동상이 모셔져 있다. 노(能)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어린아이 인형의 이름은 '기쿠마루(菊丸)'이다. 국화 이슬을 마시고 700세까지 장수했다고 전해지는 '마쿠라지동(枕慈童)'을 상징한다.
복: 불로장생, 사업 번창
츠키호코
오닌의 난 이전의 기록에서는 별칭이었으나, 달을 들고 천왕좌에 츠쿠요미노미노미코토(月読尊)를 모신다고 해서 달鉾(月鉾)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사기(古事記)」에 따르면, 이타나기노미코토(伊弉諾尊)가 황천국에서 돌아와 정화할 때 왼쪽 눈을 씻어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 오른쪽 눈을 씻어 쓰키요미노미코토(月読尊), 코를 씻어 소노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를 낳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월독존은 밤을 지배하는 신이 되었으며, 수덕의 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호코에는 달과 물과 관련된 장식품이 많다고 한다. 18금으로 만든 호코 머리의 초승달, 태양의 사신으로 여겨지는 야타카루, 정교한 금속 조각으로 덮인 토끼 조각 등 볼만한 장식품이 곳곳에 있다.
효험: 액막이, 역병 퇴치
닭꼬치
천하 태평성대가 이어지면서 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두드려 호소할 수 있는 북(간고)에 이끼가 자라 닭들이 둥지를 틀었다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홍백으로 감싼 삼각형 틀 안에 구리 원판이 끼워져 있는 호코두(鉾頭)는 간고(諫鼓) 안에 닭의 알이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어른스러운 풍모의 어린아이 인형은 수탉을 장식한 화려한 왕관을 쓰고 있으며, 배 모양의 '천왕좌'에는 바다의 수호신 스미요시메이신(住吉明神)이 모셔져 있다.16세기경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에서 제작되어 에도시대 초기에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중요문화재 지정의 미노오(야마호코의 뒤쪽을 장식하는 막)도 주목할 만하다. 를.
효험: 액막이, 역병 퇴치
방하鉾
호코의 이름의 유래는 참나무 한가운데 있는 '천왕좌'에 방하승의 동상이 모셔져 있는 데서 유래했다. 방하(放下)는 선어로 집착과 번뇌를 모두 내려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거리에서 불법을 설법하는 승려를 방하승(放下僧)이라고 한다. 호코두의 모양은 해, 달, 별의 세 가지 빛이 아래쪽을 비추는 모습과 광이끼를 표현하고 있다. 스하마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스하마 호코'라고도 불린다. 쇼와 4년 이후부터 등장한 어린아이 인형은 구니미야 다카왕 전하가 명명한 '산코마루(三光丸)'이다. 순행 시에는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호코 위에서 사랑스러우면서도 박력 있는 어린아이의 춤을 선보인다. '쿠지토리무라'의 21번째 호코.
효험: 액막이, 역병 퇴치
이와토야마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록된 '국산(國産)'과 '천의바위(天の岩戸)'라는 일본 신화의 정취를 함께 지니고 있다. 산이지만 호코와 마찬가지로 바퀴가 달린 견인산으로, 참나무 대신 소나무를 세우고 있다. 이타나기노미코토(伊弉諾尊),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 타지카라오노미코토(手力男命)의 삼신(三神)의 신체를 모시고 있으며, 순행 시에는 지붕 위에 천지경모(天之瓊矛)를 내민 모습의 이타나기노미코토의 신체를 모셔 놓고 순행한다. 가노 에이토쿠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우에스기 가문 소장 '낙중낙외도 병풍'에는 모모야마 시대의 이와토야마(당시에는 아마노사카호코산)의 모습도 있다. 오닌의 난 이전부터 존재했던 기록이 [야사카 신사]의 사보에 남아 있다.
효능 : 개운, 액막이
후나호코
'일본서기' 등에 기록된 신공황후의 신라 출항에서 유래한다. 원목은 없고 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배머리에는 에도시대 중기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상상의 새, 게키가 좌우로 날개를 펼치고 있다. 옥상에 안치된 신공황후의 신체는 가면을 쓰고 머리 위에는 금색 왕관, 주홍색 대갑옷을 입은 용맹스러운 모습이다. 황후를 돕는 스미요시메이신, 가시마메이신, 용신 아즈미이소라 삼신상과 함께 출진한다.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남장을 하고 출정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여 황자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신공황후를 기리기 위해 순행 후에는 신체에 감은 순산기원 복대를 수여받는다. '제비뽑기'로 전야제 순행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효능: 역병 퇴치, 순산
야마부시야마
에도 시대에 민간 신앙으로 인기를 끌었던 수겐도(修験道)와 야마부시(山伏). 야사카에 있는 [호칸지]의 오층탑이 기울어졌을 때 법력으로 고쳤다는 등의 신비한 일화가 남아있는 천태종 승려 조조키쇼를 모신다. 신주는 수행을 위해 기이 산간 지역으로 들어가는 오미네 입산의 모습. 왼손에는 이타카주즈(刺高珠), 오른손에는 도끼를 들고 허리에 호라가이(法螺貝)를 차고 있다. 야마호코 순행 며칠 전에는 [쇼고인]의 승려들에 의한 고마불 피우기, [야사카 신사]의 신관에 의한 정화, [롯카쿠도]의 승려에 의한 기도가 진행되어 신불분리 이전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회관 안쪽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초가도 설치된다.
효험:천둥(雷), 액막이, 액막이
맹종산
중국에서 효행이 뛰어난 24명의 효자를 뽑은 '24효' 중 한 명인 맹종(孟宗)을 모시고 있으며, 일명 '죽산(竹山)'이라고도 불린다. 병든 어머니를 모시는 맹종이 어머니가 좋아하는 죽순을 겨울 눈 속에서 찾아 헤매다 고생 끝에 캐낸 장면을 표현한 신상은 칠조대불사 강조좌경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사람 복장에 갓을 쓰고 오른손에는 눈을 뒤집어쓴 죽순을, 왼손에는 괭이를 어깨에 메고 서 있다. 산에 세워진 소나무에도 눈이 그려져 있다. 배웅은 백철지에 먹으로 그린 '맹종죽림도'로 다케우치 스호(竹内栖鳳)의 붓으로 그려졌다. 화려한 색채의 산호초 속에서 먹으로만 그린 붓의 아름다움도 눈길을 끈다.
혜택 : 효도
타이시산
신체는 흰 옷을 입고 머리를 미즈라로 묶은 소년 시절의 쇼토쿠 태자. 오른손에 도끼, 왼손에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은 [시텐노지]를 건립할 때 직접 나무를 구하러 산속으로 들어가 교토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몸을 정결하게 할 때 일시적으로 나무에 매달아 놓은 염불이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나무로 당을 세워 안치했다는 일화로, 현재의 [시운산 정법사(육각당)]의 연유이기도 하다. 다른 산처럼 소나무가 아닌 삼나무가 세워진 것도 그 때문이며, 부엌 안에 작은 여의륜관음상을 봉안하고 있다.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지혜의 부적' 등을 수여한다.
복: 지혜, 학업성취, 대리만족, 대속
곽거산
중국 사서 '24효'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곽거의 고사에 얽힌 산이다. 가난 때문에 어머니와 자식을 부양할 수 없게 된 곽거는 고민 끝에 자식과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흙 속에서 많은 금을 발견해 어머니를 효도하고 자식을 부양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신주는 금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의 곽거와 동자의 모습이다. 동자는 오른손에 당나라 부채, 왼손에 홍백모란을 들고 있다. 지붕에 차양이 달린 산은 흔치 않은데, 오동나무, 벚꽃, 국화 문양의 금색 채색 보상화 문양의 유곽(乳隠)이 기둥 테두리 아래에 사용된 것도 독특하다. '가마솥을 파는 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금운개벽의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복: 개운, 금전운, 모유출혈을 지켜준다.
보창산
무예가 뛰어나고 와가(和歌)에 능통한 무장 야스마사 히라이 호마사와 헤이안 시대의 시인 이즈미 시키베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산이다. 식부는 자신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확인하기 위해 시쿠부에게 시신덴(紫宸殿)의 홍매화를 달라고 부탁한다. 호쇼는 밤에 궁궐에 몰래 들어가 호위병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한 가지를 꺾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어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 메이지 초까지 '하나누스비토야마(花盗人山)'라고도 불렸다. 신체는 홍색 갑옷에 칼을 차고 많은 홍매화를 바치고 있는 호쇼의 모습이다. 로맨틱한 일화에서 인연 맺기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매화꽃이 그려진 부적이나 지마키를 수여한다.
혜택: 인연 맺기
유텐진산
현재 마을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 이 산은 공가였던 카자하야케 가문에 예로부터 모셔져 있던 천신을 권청하여 만들어진 산이다. 위치가 '유키코지 아야코지 시모루'라고 해서 '유텐진산', 간청한 날이 소의 날이었기 때문에 '우텐진산'이라고도 불린다. 정면에는 주홍색 도리이, 금박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사당 안에는 목조 채색 천신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동상은 후하야 가문에 전해진 후 마을의 사당에 모셔져 있으며, 1630년(간에이 7)에 제작된 것이다. 여러 차례 큰 화재와 병화를 겪으면서도 부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험: 학업성취, 액막이용, 액막이
시조 우산鉾
오닌의 난 이전에 기원을 둔 오래된 형태의 '우산鉾(傘鉾)'의 하나로, 직물로 만든 우산과 스틱을 휘두르며 행진하는 춤이다. 아야 우산鉾와 같은 순행 스타일이지만, 하야시(囃子)에 맞춰 춤을 추는 아카쿠마(赤熊)를 쓴 샤구마(棒振り)와 북, 꽹과리, 사사라(鉦)와 같은 하야시카타(囃子方)를 모두 어린이들이 담당한다. 1872년(메이지 5) 이후 순행이 중단되었다가 1985년(쇼와 60)에 우산 본체가 복원되었고, 1988년(쇼와 63)에는 순행에 빠질 수 없는 춤과 음악이 다시 부활했다. 무로마치 시대에 교토에서 퍼진 풍류춤으로, 현재도 시가현의 [타키키 신사]에 전해지는 겐케토오도(ケンケト踊)를 참고했다고 한다.
복을 불러들이고 액운을 쫓는다.
蟷螂山
'사마귀의 도끼로 자동차의 수렁을 뚫는다'는 중국 고사에서 유래했다. 사마귀가 앞다리를 들고 자동차에 도전하는 것처럼 약자가 큰 적에 맞서 싸우는 행위를 의미한다. 산의 기원은 남북조 시대에 아시카가 군에 도전한 시조 류지(四条隆資)의 전투 모습이 사마귀의 도끼와 같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도래인 진외로 다이니치 종기가 사마귀를 타고 시조 가문의 가마에 싣고 순행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막부 말기 이후 오랫동안 휴업 중이었으나 1981년(쇼와 56년)에 117년 만에 부활했다. 사마귀와 고쇼차의 바퀴가 움직이는 등 야마호코 중 유일하게 가라쿠리(からくり)가 적용되어 있다. 일반粽 외에 고헤이(御幣)와 사마귀 종이접기, 사카키(榊)를 붙인粽(粽)도 독특하다.
효험: 액막이, 역병 퇴치
백아산
고대 중국 주(周)나라 때 거문고의 명수였던 백아(伯牙)가 자신을 잘 이해해 주던 절친한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은 슬픔에 거문고 줄을 끊고 두 번 다시 연주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고토와리야마'라고도 불렸으나 메이지 유신 때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신체의 백아(白牙)는 손에 도끼를 들고 괴로운 표정으로 거문고를 부수려고 내려다보는 박력 있는 모습이다. '金勝亭賽偃子'라는 묵서명(墨書銘)이 있어 에도시대 중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산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모두 백아와 거문고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다. 액막이와 재앙을 막는 것 외에도 기예 향상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효험: 액막이, 역병 퇴치
목적산
세아미의 작품으로 알려진 부자의 재회를 노래한 노래 '도적'을 소재로 한 산이다. "토쿠사(木賊)"는 "도끼풀(砥草)"이라고도 쓰이는데, 연마 등에 사용되는 다년생 식물을 뜻한다. 신상은 사랑하는 아들을 납치당한 아버지가 신노국 후시야 마을에서 한 손에 낫을 들고 쓸쓸히 도쿠사를 베고 있는 재회 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발판에는 1692년(겐로쿠 5) 6월 길일(吉日)이라는 묵서명(墨書銘)이 있으며, 모모야마 시대의 나라 불자 카스가(春日)가 조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절한 표정은 화려한 장식물과는 대조적이다. 헤어진 자식을 그리워하는 노인은 목도들에게 둘러싸여 슬픈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수여되는 부적과粽(粽)에는 '미아방지'와 '재회'의 효험이 있다고 한다.
혜택: 미아 방지, 재회
霰天神山
무로마치 시대에 교토에 큰 불이 났을 때 우박이 내려 맹렬한 불길이 순식간에 꺼졌다고 한다. 그때 강림한 작은 천신상을 모신 것이 이 산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산 위에는 주홍색으로 칠한 극채색의 회랑이 산마루를 따라 둘러싸고 있으며, 중앙에는 카스가 구조의 아름다운 신전이 안치되어 있다. 에도시대에 신전 지붕을 넓히고 투각담으로 바꾸는 등 개축을 했다고 한다. 담장 안에 자라는 많은 소나무와 도리이 안에 세워진 한 쌍의 사카키와 두 그루의 홍매화도 특징적이다. 주변이 큰 피해를 입은 후의 큰 화재에도 소실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화재방지(火防)'와 '번개방지(雷除け)'의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니시키코지 도리무로마치 니시이리루에 있어 '니시키텐진잔', '히부제텐진잔'이라는 별칭이 있다.
효능: 화재 방지, 번개 방지, 액막이, 액막이
백락천산
당나라의 시인이자 학문의 신으로 불리는 백락천이 노송 위에 사는 도림선사를 찾아가 "불법의 뜻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두 신체를 모시고 있는 백락천은 당나라에서 만든 백지 사냥복에 당나라 왕관을 쓰고 양손으로 홀을 들고 서 있다. 자색 옷을 입고 남색 모자를 쓰고, 수珠と払子를 들고 앉아 있는 것이 도림선사다. 문답 끝에 도림선사의 대답에 백락천은 매우 감탄했다고 한다. 그 구도심에 힘입어 학업 성취와 합격 기도의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 산도 여러 차례 큰 화재의 피해를 입어 신체의 몸통을 잃는 등의 피해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효험: 학업성취, 합격기원, 액운제거
아시갓산
헤이안 중기의 노래 이야기 '야마토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가요 '아시카가'에서 구상을 얻었다고 한다. 사정상 헤어진 부부가 결국 재회하는 부부 화합을 테마로 하고 있다. 아시리를 베어 팔며 외롭게 살던 남편의 모습을 표현한 신체는 초승달이 떠오르는 해질녘의 아시하라에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이다. 노의상을 입고 수의를 입고, 주머니에는 부채를, 손에는 낫과 갈퀴를 들고 있다. 전국시대인 1537년(덴노쿠니 시대) 시치조 대불사・겐운(兼運)의 묵서명(墨書銘)이 있는 신체의 본두와 옛 의상의 코소데(小袖)는 야마호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화재와 전란으로부터 보호받으며 귀중한 보물이 계승되어 왔다. 부부 화목의 효험을 기대할 수 있는 징코와 부적을 수여한다.
효험: 부부화합, 인연 맺기
점출산
'일본서기'에는 신공황후가 외정 전에 히젠국의 마쓰우라에서 낚시를 하며 전운을 점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곧 은어가 잡혀 전승의 길조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산에 모셔진 신공황후는 금색 모자에 칼을 쓰고 오른손에는 낚싯대를, 왼손에는 낚은 은어를 들고 서 있는 신공황후 신상이다. 임박한 달에 출정해 승리 후 무사히 황자를 낳았다고 전해져 예로부터 순산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산의 순행 순서가 빠른 해에는 순산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한다. 순행 시에는 신체에 많은 바위 띠를 감고 다니며, 나중에 순산 복대(安産御腹帯)로 수여된다. 순산 부적 외에도 최근에는 승운과 관련된 수여품도 있다. "鮎釣山(鮎釣山)이라고도 불린다.
혜택: 안산시
능직 우산鉾
현재 남아 있는 야마호코 이전의 옛 형태를 현대에 전하는 희귀한 우산鉾(우산鉾)의 하나. 우산 끝에 신체의 목각 옻칠한 닭과 소나무를 장식한 두 개의 우산이 있으며, 큰 우산을 중심으로 막대기를 휘두르는 행렬로 걸어서 순행해 왔다. 붉은 곰을 쓴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북, 피리, 징의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행진한다.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은 재앙을 쫓는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에도시대 후기에 일시적으로 고쇼차(御所車)풍의 지붕에 풍류 우산을 얹은 호코로(曳き鉾)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후에 큰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5년 정도 원형의 도보 순행을 재개, 그 후 100년 정도 중단되었다가 1979년(쇼와 54년)에 다시 부흥했다.
효능: 순산, 인연 맺기